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 서한 3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
[한국교회사연구소 신간 보도자료]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 서한 3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
지은이_ 드브레드 주교
옮긴이_ 김진희
해제 및 주석_ 윤선자
출판사_ 한국교회사연구소
분야_ 교회사 > 한국천주교회사
형태_ 152 × 225(신국판)
제본_ 무선철
면수_ 944쪽
정가_ 40,000원
발행일_ 2025년 7월 4일
ISBN_ 979-11-85700-47-2 (94230)
979-11-85700-39-7 (세트)
배포일 : 2025. 07. 01
책 소개 |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 서한집 세 번째로 1900년 한국 선교사로 파견되어 강원도 원주 본당 주임, 1906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를 거쳐 1920년 서울대목구 부주교로 임명된 후 1926년 선종하기까지 한국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해 온 파리외방전교회 드브레드 주교의 서한을 모은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이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드브레드 주교가 직접 쓴 서한을 비롯하여 연례 보고서, 주교 축성식 팸플릿, 전보, 사망 증명서, 선종 추도사 등이 실려있다. 이와 함께 드브레드 주교의 연보를 실었고 전남대학교 사학과 윤선자 교수가 해제를 쓰고 주석을 달아 1900~1925년 한국 천주교회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
서울대교구 200주년 기념 자료집 세 번째 서한집,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 간행!
한국교회사연구소(이사장 구요비 주교, 소장 조한건 신부)는 오는 2031년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을 맞아 교구사 집필에 필요한 기초 자료집들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그중에서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 서한집 시리즈로 『한기근 바오로 신부 서한집』(2022년)이 간행되었고, 두 번째 서한집으로 『코스트 요한 신부 서한집』(2023년)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 서한집으로 서울대목구장 부주교였던 드브레드 주교와 관련된 서한 등을 모아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을 간행하였다.
1920~1925년 한국 교회의 모습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책
이 서한집에는 드브레드(Devred, Émile Alexandre Joseph, 유세준[劉世俊], 1877~1926) 주교가 신부였을 때의 서한과 부주교로 임명된 이후의 서한 및 관련 문서 등이 총 164개 수록되어 있다. 드브레드 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한국 교회에 파견될 때부터 선종하기까지 쓴 여러 서한은 물론, 연례 보고서, 주교 축성식 팸플릿, 소포 수령증, 전보, 사망 증명서, 선종 추도사 등 드브레드 주교와 연관된 다양한 문서를 볼 수 있다. 또한 드브레드 주교의 연보와 함께 전남대학교 사학과 윤선자 교수의 해제와 주석을 통해 당시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는 간행사를 통해 “이 자료집을 통해 당시의 교회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소 잊혀 있던 드브레드 주교의 활약상이 더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전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서한과 자료를 통해 1900년대 초반 한국 교회의 모습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차례 |
간행사 6
연보 22
해제 26
서한 목록 59
일러두기 67
번역문 68~557
판독문 558~919
색인 920
지은이 소개 |
지은이 : 드브레드, 에밀 알렉상드르 조제프 (Devred, Émile Alexandre Joseph)
1899년 9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고 11월 15일 한국 파견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한국에 도착하여 5월 13일 원주(原州, 현 원동 주교좌) 본당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다가 넓은 강원도 지역의 선교 구역을 분할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에게 이를 지속적으로 제안하였다. 1906년 8월 8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된 뒤 『예수 성심의 타벨라(Tabella SS. Cordis Jusu)』 창간에 힘썼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징집 명령을 받고 1914년 8월 9일 프랑스로 귀국하여 참전하였고, 1919년 10월 15일 용산 신학교로 복귀하였다. 1920년 8월 20일 에제봉(Hésébon) 명의의 계승권을 가진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5월 1일 종현(현 명동) 대성당에서 원산 대목구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와 함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병인박해 순교자 26위 자료 수집, 한국인 사제 피정 지도, 『서울 대목구 지도서』 원칙 작성 및 출판 등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담당하다가 1926년 1월 17일 점심 식사 후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그 이튿날 선종하고 말았다. 1월 21일 명동 성당에서의 장례 미사에 이어 서울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책 속으로 |
주교님,
이전 편지에서, 저는 프와요 신부님에게 독립된 구역을 배정해 주기 위해 원주와 풍수원의 두 구역을 분할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풍수원 근방과 홍천, 춘천, 양구, 낭천 및 가평을 사목하면 될 것입니다. 이 구역의 신자는 1,200명에서 1,300명 정도일 것입니다. 프와요 신부님은 용소막, 제천, 충주, 증평, 평창, 영월을 맡으시면 될 것입니다. 신자는 1,000명 내지 1,100명 가까이 될 것입니다. 저는 광주, 양근, 지평, 원주, 횡성과 강릉 그리고 여주의 일부 지역을 사목하면 될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아우구스티노 신부님과 프와요 신부님의 두 구역은 (사목하기에) 매우 잘 구분될 것입니다. (‘드브레드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04년 1월 23일 자 편지’ 중에서, 136~138쪽)
주교님,
한국을 떠나와서야 그곳에서 살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나 봅니다. 저희는 잃어버린 그 행복을 매일 생각합니다. 부디 그 행복을 곧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행히도 저희가 언제 그 행복을 향해 출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별은 아직 전혀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샬롱쉬르마른에서 가엾은 환자들 곁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큰 변화 없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확실한 것은 저희의 존재가 이곳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서 더 좋아하는 것은 군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드브레드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14년 11월 14일 자 편지’ 중에서, 235쪽)
친애하는 제라르 신부님,
조제 신부님이 당신께 편지 부치는 기회를 이용해서 제가 빠트렸던 사항을 간단히 적어 동봉합니다. 뮈텔 주교님과 드망즈 주교님은 시복식을 위해 프랑스에 갈 채비를 하고 계시며, 날짜를 알고 싶어 초조해하고 계십니다. 이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얻으시면 저희에게 전보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드망즈 주교님은 (시복식) 날짜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하기 위해 그 날짜를 신속히 알고 싶어 하십니다. 라리보 신부님이 파리에 도착한 이후로 여전히 편지가 없습니다.
(‘드브레드 부주교가 제라르 신부에게 보낸 1924년 7월 31일 자 편지’ 중에서, 416~417쪽)
주교님께서 가급적 1925년 안에 새로운 선교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뮈텔 주교님과 저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상업학교에 항상 매우 관대하게 베풀어 주시는 당신의 도움은 그 어느 때보다 환영받을 것입니다. 뮈텔 주교님께서 조만간 학교 현황과 한국의교육 사업이 얼마나 대표적인 선교 사업이 되었는지 직접 말씀드릴 것입니다.
바티칸 박람회에 보낼 상자들 재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물품 일부는 교체가 불가능하여 다소 손상된 채로 보냅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물품들은 뺐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물품의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이 물품들이 매우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이 저희의 의지와는 무관합니다.
(‘드브레드 부주교가 게브리앙 총장 주교에게 보낸 1924년 12월 6일 자 편지’ 중에서, 437쪽)
배포일 : 2025. 07.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