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 간행

<100년 전 한 프랑스 선교사가 남긴 편지들>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는 2020년 안중근(安重根, 토마스, 1879~1910) 순국 11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 ‘영적 아버지’ 빌렘 신부의 서한을 판독·번역한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를 간행하였다. 이 책에 소개된 서한들은 조제프 빌렘 신부가 황해도 지역 사목을 담당한 1896년부터 1914년까지 작성한 편지 가운데 안중근 가문과 관련된 것만 정리하여 판독·번역한 것으로 총 26통이다. ‘한글 번역본’과 ‘프랑스어 판독본’으로 엮어 주석과 해제를 달고 다양한 사진 자료 및 연보 등의 부록을 수록했다.

1909년 10월 26일의 안중근 의거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대한국인 안중근’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 ‘안 토마스’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회사 학자들에게는 빌렘 신부의 사목 서한 중 안중근과 관련된 자료가 소개된 바 있지만, 안중근과 그의 가문에 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자료화하는 것은 이번 서한집이 처음이다. 이에 연구소는 연구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유익한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 및 고문서 등 참고 이미지를 충분히 첨부했으며, 한글 번역본 뒤에 프랑스어 판독본을 별도로 배치해 일반 대중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 형태로 엮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빌렘 신부와 안중근 토마스의 이야기>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니콜라 조제프 마리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helm, 요셉, 1860~1938) 신부는 프랑스 로렌(Lorraine) 지방 출신으로 1889년부터 1914년까지 25년간 조선 선교사로 활동했다. 한국 이름은 홍석구(洪錫九).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포살하고 뤼순(旅順) 형무소에 투옥된 안중근,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하얼빈 의거 후 옥중에서 성사를 받기를 원해 한국 천주교회에 신부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조선 대목구장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는 안 토마스의 성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 베드로, 1862~1905)을 비롯한 안씨 가문과 세례성사로 인연을 맺은 빌렘 신부는 주교가 금했음에도 뤼순으로 향했다. 1910년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안중근을 면회한 뒤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주었다. 이 일로 빌렘 신부는 60일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후에도 안중근의 면회 문제 등으로 뮈텔 주교 및 동료 선교사들과 갈등 관계를 형성하며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빌렘 신부는 주교에게 임시 휴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동료 선교사들은 빌렘 신부에게 선교지를 떠날 것을 요구했고, 결국 1914년 4월 22일 한국을 떠났다. 프랑스로 돌아간 빌렘 신부는 출신 교구에서 사목하다가 은퇴한 뒤 1938년 5월 16일 선종하였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주요 자료>

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빌렘 신부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는데, 지금에 이르러 이 서한들은 안중근 의거에 대한 빌렘 신부의 인식과 일제의 한국 지배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아울러 해서교안(海西敎案) 당시 황해도 천주교회의 상황 등 역사적인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빌렘 신부가 교안 당시 교회 측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었던 만큼 해서교안을 이해하는 데 주요 자료가 되고 있다. 이처럼 『(안중근 순국 110주년 기념 빌렘 신부 서한집) 빌렘 신부, 안중근을 기록하다』는 안중근과 그 가문의 신앙생활, 해서교안, 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의거 이후의 안씨 가문에 관한 기록, 안악사건 등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할뿐만 아니라 대한국인 안중근의 독실한 신앙, 그리고 안 토마스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변화되어 갔던 프랑스인 선교사의 시선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끝〉

배포일 : 2020-09-16